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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G vs SLG: 제품이 고객을 데려올 것인가, 영업이 고객을 데려올 것인가

성장 엔진은 하나만 골라야 합니다. 둘 다 하겠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SaaS 제품을 만들고 나면, 다음 질문은 항상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 고객을 데려오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성장 전략입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제품이 스스로 고객을 끌어오는 PLG(Product-Led Growth), 그리고 사람이 직접 고객을 설득하는 SLG(Sales-Led Growth).

문제는 대부분의 인디 파운더가 이 선택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좋은 제품 만들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PLG를 하고 있는 건지, SLG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 채 시간을 보냅니다. 두 전략은 제품의 구조부터 가격, 마케팅, 팀 구성까지 전부 다릅니다.

PLG: 제품이 영업사원입니다

PLG는 Product-Led Growth, 제품주도성장입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고객이 제품을 직접 써보고, 가치를 느끼고, 스스로 결제하는 구조입니다. 영업 전화도, 데모 미팅도 없습니다. 가입 → 사용 → 결제, 이 흐름이 제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Notion, Figma, Slack, Canva가 대표적인 PLG 기업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료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용자는 돈을 내기 전에 제품의 가치를 충분히 경험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료의 한계에 부딪히면, 자연스럽게 유료로 전환합니다.

PLG의 가장 큰 무기는 확장성입니다. 영업사원 한 명이 하루에 만날 수 있는 고객은 5명입니다. 하지만 좋은 제품은 하루에 5,000명을 온보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서버의 시간으로 성장합니다.

  • 가격대: 월 0원~50,000원. 개인 또는 소규모 팀이 결재 없이 결제할 수 있는 금액.
  • 전환 경로: 무료 가입 → 가치 경험 → 셀프서브 결제.
  • 핵심 지표: 활성 사용자 수, Time to Value, 무료→유료 전환율.
  • 마케팅: SEO, 콘텐츠, 바이럴 루프, 커뮤니티.

SLG: 사람이 성장 엔진입니다

SLG는 Sales-Led Growth, 영업주도성장입니다.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영업 담당자가 고객을 발굴하고, 만나고, 설득하는 구조입니다. Salesforce, Oracle, SAP가 전통적인 SLG 기업입니다.

SLG에서는 제품 데모가 핵심입니다. 잠재 고객이 문의를 남기면, 영업 담당자가 연락하고, 미팅을 잡고, 데모를 보여주고, 제안서를 보내고,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 과정이 3주일 수도 있고, 6개월일 수도 있습니다.

SLG의 장점은 높은 객단가입니다. 제품을 직접 설명하고 고객의 상황에 맞게 제안할 수 있기 때문에, 연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짜리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기업 고객일수록, 복잡한 제품일수록 SLG가 유리합니다.

  • 가격대: 연간 수백만 원 이상. 결재 라인을 거쳐야 하는 금액.
  • 전환 경로: 리드 수집 → 영업 연락 → 데모 → 제안서 → 계약.
  • 핵심 지표: 파이프라인, 계약 성사율, ACV(연간 계약 가치).
  • 마케팅: 콜드 이메일, 전시회, 웨비나, 콘텐츠 마케팅.

같은 제품, 다른 성장 공식

PLG와 SLG는 단순히 마케팅 방법의 차이가 아닙니다. 제품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PLG 제품은 가입 후 5분 안에 가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복잡한 설정이나 온보딩 미팅 없이, 사용자가 혼자서 "아, 이거 좋다"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PLG 제품은 직관적인 UI, 빠른 온보딩, 셀프서브 결제 시스템에 투자합니다.

SLG 제품은 다릅니다. 복잡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영업 담당자가 설명할 테니까요. 대신 고객의 특수한 요구사항을 맞춤 설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마다 다른 워크플로우, 보안 요구사항, 통합 API가 중요합니다.

PLG는 "제품이 말하게 하라"이고, SLG는 "고객의 말을 들어라"입니다. 둘 다 유효하지만, 동시에 잘 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디 파운더에게 PLG가 유리한 진짜 이유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의 인디 파운더에게 PLG가 더 적합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업팀이 없기 때문입니다.

SLG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시간을 투입하는 전략입니다. 리드를 발굴하고, 미팅을 잡고, 데모를 하고, 팔로업하고, 계약서를 주고받는 모든 과정에 당신의 시간이 들어갑니다. 인디 파운더가 이 과정을 혼자 하면, 제품 개발에 쓸 시간이 사라집니다.

PLG는 다릅니다. 제품이 일합니다. 당신이 자는 동안에도 누군가 가입하고, 사용하고, 결제합니다.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반복 비용 없이 작동하는 성장 엔진입니다. 인디 파운더의 가장 희소한 자원인 시간을 아끼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Canva는 PLG로 시작해서 1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습니다. 초기에 영업팀은 0명이었습니다. Notion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품이 좋으면, 사용자가 사용자를 데려옵니다.

그런데 SLG가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모든 제품이 PLG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조건에 해당한다면, SLG를 고려해야 합니다.

  • 객단가가 월 50만 원 이상: 이 금액부터는 개인이 혼자 결제하지 않습니다. 결재 라인을 거쳐야 하고, 의사결정자를 만나야 합니다.
  • 제품이 복잡한 설정을 요구: 초기 설정에 고객의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API 연동, 맞춤 설정이 필요하다면, 셀프서브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 구매자와 사용자가 다른 B2B: 제품을 쓰는 사람(실무자)과 돈을 내는 사람(관리자/경영진)이 다르면, 관리자를 직접 설득해야 합니다.
  • 시장이 매우 작고 고가치: 잠재 고객이 100개 미만인 엔터프라이즈 시장이라면, 한 건 한 건 직접 영업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한국 시장의 특수성도 있습니다. 한국의 B2B는 아직 관계 기반 영업이 강합니다. 카카오톡으로 담당자와 직접 소통하고, 오프라인 미팅에서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고객이라면, SLG 없이는 문을 열기 어렵습니다.

PLG로 시작하고, SLG를 얹는 하이브리드 전략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접근법은 PLG로 시작해서 SLG를 얹는 것입니다. Bottom-up으로 사용자를 확보한 뒤, Top-down으로 기업 계약을 따내는 구조입니다.

Slack이 대표적입니다. 개발 팀 몇 명이 무료로 쓰기 시작합니다. 점차 부서 전체가 사용하게 되고, 어느 순간 IT 관리자가 "이거 공식 도구로 도입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때 Slack의 영업팀이 개입합니다. 이미 제품을 쓰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업은 "설득"이 아니라 "계약 체결"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인디 파운더도 이 패턴을 쓸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 사용자나 소규모 팀을 PLG로 확보합니다. 그러다가 기업 고객이 "우리 회사 전체가 쓰고 싶은데 견적을 받을 수 있나요?"라고 문의해 오면, 그때 SLG를 시작하면 됩니다.

PLG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SLG는 열매를 수확하는 것입니다. 씨앗 없이 수확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3가지 점검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 고민된다면, 다음 세 가지를 점검하세요.

  • 가입 후 5분 안에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가? "예"라면 PLG가 가능합니다. "아니오"라면 온보딩을 단순화하거나, SLG로 가야 합니다.
  • 고객이 신용카드로 바로 결제할 수 있는 가격인가? 월 5만 원 이하라면 PLG. 그 이상이라면 SLG 또는 하이브리드를 고려하세요.
  • 고객이 고객을 데려오는 바이럴 루프가 있는가? 공유, 초대, 협업 기능이 제품에 내장되어 있다면, PLG의 성장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성장 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은, 제품의 DNA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바꿀 수 있지만, 비용이 큽니다.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선택하세요. 인디 파운더라면, PLG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정답입니다. 제품이 말하게 하세요. 당신은 그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